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비보르 절멸수용소 (문단 편집) === SS 상사 '가스마이스터' [[에리히 바우어]](Erich Bauer) === [[파일:Erich Bauer.jpg|width=250]] (1900년 3월 26일 - 1980년 2월 4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바워는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1933년 입당해 돌격대 대원이 되었다가 다시 친위대로 이적했다. 그는 1940년까지 차장 일을 하다가 1940년 후반에 [[T-4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승진했다. 1942년 4월에 소비블 강제 수용소로 파견된 바워는 그곳에서 유대인과 집시들의 가스실 처형을 담당하는 가스실 운영자였다. 얼마나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는지 수용자들은 바워에게 '''목욕탕의 마이스터(장인)'''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였다. 바워는 소비블 강제 수용소의 탈주극이 벌어졌을 때 수용자들에게 살해된 친위대 중사 루돌프 베크만의 시체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가까이에서 일하던 유대인 수용자 2명을 총살하기도 했다. 전후 오스트리아에서 미군의 포로가 된 바워는 1946년에 석방되어 [[베를린]]에 머물렀고, 전후 건물 잔해를 정리하는 직업을 얻어 생활하다 우연히 소비보르에서 탈주한 생존자들과 마주친 후 체포되었다. 그렇게 1949년에 다시 체포된 후 전범혐의로 기소된 바워는 1950년 5월 8일에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서독에서 사형이 폐지되면서 종신형으로 감형된 후 1971년에 가석방되었고, 1980년에 사망했다. 바워는 소비보르의 주요 간부들 중 가장 먼저 체포되어 소비보르에 대한 증언을 상당히 많이 남겼는데, 문서 곳곳에 그의 증언이 배치되어 있다. 바워가 감형 없이 형을 살다 1980년 사망했다는 얘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